경기도 문화재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적용
정사호선생묘역
鄭賜湖先生墓域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향토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동두천시향토유적지 제6호
명칭(한자) 정사호선생묘역 (鄭賜湖先生墓域 )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1986-04-28
소 재 지 경기도 동두천시 안흥동 산21-6번지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정사호선생묘역(鄭賜湖先生墓域)은 동두천시향토유적지 제6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동두천시 안흥동 산21-6이다.

정사호(鄭賜湖, 1553∼1616)는 조선 중기 때의 문신으로 자는 몽여(蒙與), 호는 화곡(禾谷), 본관은 광주로 장령(掌令)을 지낸 이주(以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573년(선조6) 사마시에 급제한 후 1577년(선조10)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주서(注書), 호조좌랑, 안동부사, 호조참의 등을 지냈고 금성현령으로 있을 때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왕자일행의 북행길을 호위하고 현민소개에 힘썼다.
또한 정유재란 때 안동부사로 명나라 군대와 함께 왜적을 토벌하여 큰공을 세워 1601년(선조34) 이래로 다섯 번이나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다. 1602년(선조35) 대사헌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황해도 관찰사가 되고, 뒤이어 경상도·평안도·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1609년 선조가 죽자 이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선조실록』편찬에 참여했다. 이어 한성판윤을 거쳐 1615년(광해군7) 형조판서에 올랐고, 얼마 뒤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광해군 8년, 향년 64세로 죽었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敏)이다.

– 구 조 : 봉분3, 문신상2, 망주석2, 묘비1, 상석2, 향로석1
– 기단부 : 높이 86㎝, 폭 55㎝, 두께 25㎝
– 상 석 : 높이 139㎝, 폭 83㎝, 두께 25㎝
– 비 신 : 높이 153㎝, 폭 56㎝, 두께 29㎝

(자료출처 : 동두천시청)

[문헌목록]
『향토유적총람-시·군지정편』
『동두천시사. 下』
※ 문화재를 보고 묘사하는 단어, 떠오르는 인상이나 느낌 등을 한 두 단어로 입력해보세요.
※ 여러분과 같거나 다른 생각들을 확인해보세요.
이전 다음 동두천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경기문화재단이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작품 사진의 경우 작품저작권자의 권리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문의 후 이용 바랍니다.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