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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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청문당
安山淸聞堂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도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4호
명칭(한자) 안산청문당 (安山淸聞堂)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0-03-24
소 재 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청곡길 77(부곡동 261-15)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안산청문당(安山淸聞堂)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청곡길 77(부곡동 261-15번지)이다.

이 집은 진주유씨 16세손 유시회(柳時會 : 1562~1635)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조카 유적(由頔)이 선조의 부마가 된 후 진주유씨는 넓은 사패지(賜牌地)와 어염권을 기반으로 이곳에 세거하여 왔으며 이후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조선 중기에는 기호남인(畿湖南人) 3대가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남인 문사들이 이곳에 모여 교류하였고 더 나아가 실학의 산실이 되었다. 20세손인 해암 유경종(柳慶種 : 1714~1784)은 시문에 능하였고 의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매부인 표암 강세황(姜世晃 : 1712~1791), 지기인 순암 안정복(安鼎福 : 1712~1791)과 함께 성호 이익(李瀷 : 1681~1763)의 문하로 활동하였고 그의 말년에는 이곳에서 오천시사(午川詩社)를 결성하였는데 많은 문인과 묵객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특히 청문당의 만권루(萬卷樓)는 조선 4대 서고의 하나로 기호남인들의 학문적인 기반이 되었다.

청문당은 앞마당에 면하여 ㄷ자형 사랑채가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아랫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트인 ㅁ자 형식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 동북쪽에는 사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뒷뜰에는 화계(花階)가 조성되어 있고 화단의 한 가운데 커다란 모과나무가 남아있다. 집 앞에는 오래된 연지가 있는데 연지 동쪽에 바깥사랑채에 해당되는 연당(蓮堂)이 있었고 그 서쪽에 현정(玄亭)이 있었으며 북쪽에는 우물과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서쪽으로부터 2칸 안방, 6칸 대청, 1칸반 건넌방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안방 남쪽으로 부엌칸이 날개처럼 달려있는데 대청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채는 서쪽으로부터 1칸 광, 1칸 반 일꾼방, 1칸 반 대문간, 2칸 사랑방, 2칸 서고가 배열되어 있고 사랑방 전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다. 두 건물 모두 가구는 전퇴 5량 형식이고 지붕은 팔작 형식이다. 사당은 3칸 규모인데 3량가에 맞배지붕의 단순한 건물이지만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트인 ㅁ자 형식으로 배치되어 안마당에서 외부로 직접 연결되는 중문이 있는 점은 경기지역의 민가에서 흔히 보여지는 방식이며 안채와 사랑채, 사당의 치석(治石) 및 치목(治木), 용재(用材)와 결구법(結構法) 등은 사대부가의 예를 따르고 있는데 이는 경기도 주거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 경기도, 2005)

[문헌목록]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3)』
『(지도로 보는) 아름다운 경기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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