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발굴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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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적위치 :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393·618-11번지 / 393-16 번지 일원
  • 시 대 : 청동기, 원삼국, 삼국, 조선
  • 조사기관 : 경기문화재연구원 / 겨레문화재연구원
  • 조사연도 : 2004~2006 / 2008~2009
  • 유구내용 : 주거지, 수혈, 경작유구, 굴립주, 구상유구, 석실묘, 구들 등

가평 대성리 유적은 경춘선복선전철 사업구간 조사과정에서 확인되어 구제발굴조사 되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선로구간, 겨레문화재연구원이 대성리역사 건립구간을 시차를 두고 조사하였다.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한 구간에서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주거지, 수혈, 경작유구 등 138기와 삼국시대 석실묘, 조선시대 주거지 4기 등 총 142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주거지는 평면이 장방형으로 주축방향이 북한강의 흐름과 같은 방향으로 열을 지어 조성되었다. 특히 17호 주거지는 화재로 폐기되어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노지 2곳, 저장공 6곳, 정치된 상태의 공렬토기가 확인되었으며, 토기 15개체, 석기 12점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축조시기는 청동기시대 전기(기원전 10~8세기)에 해당한다.
원삼국시대 마을은 전기와 후기 두 단계에 걸쳐 형성되었는데, 전기의 마을에서는 부뚜막이 설치된 방형 집자리와 작은 수혈유구가 조사되었다. 특히 49호 수혈에서는 말 이빨을 매납한, 일종의 제사유구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화분형 토기, 낙랑토기, 철경동촉, 소찰 등 낙랑 유물이 대부분이다.
원삼국시대 후기의 마을에서는 방형의 집자리와 더불어 ‘呂’·‘凸’자형 집자리가 조사되었으며, 작은 굴립주 건물지와 구상유구가 각각 양쪽에 배치되어 있다. 집자리 바닥에는 공통적으로 점토를 깔았으나, 집자리의 평면형태에 따라 취사 및 난방 시설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呂’자형 집자리는 무시설식 노지인 반면, ‘凸’자형은 부석식 노지이고, 방형 집자리에서는 ‘ㄱ’자 형태의 터널형 노지가 조사되었다. 이 집자리 가운데 일부에서는 철기와 함께 철재, 노벽편, 모루돌 등이 출토되어 마을 내부에서 단야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낙랑계토기와 청동 단추, 야요이계토기가 포함되어 있어 당시 이 지역 집단의 성격 및 대외교류의 정황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차편년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대성리 유적은 마을 내에서의 소규모 철기 제작 양상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낙랑군 설치를 전후한 시기에 해당되는 원삼국 전기에는 집자리와 수혈유구에서 주조철부의 날 부분과 몸체의 측면 부분, 그리고 판상의 몸통 부분 등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파손된 주조철부를 재활용하여 철기를 생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강변의 자연제방에 입지한 청동기 및 원삼국시대의 마을 유적이며, 원삼국시대 마을 구조를 알려주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주)삼성엔지니어링, 2009, 『가평 대성리 유적』
겨레문화유산연구원·한국도시철토공단, 2011, 『가평 대성리 유적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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