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발굴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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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적위치 :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농서동 일원
  • 시 대 : 구석기~조선
  • 조사기관 : 경기문화재연구원
  • 조사연도 : 2005~2008
  • 유구내용 : 유물포함층, 주거지, 수혈, 공방지, 건물지, 가마, 소성유구, 구상유구, 적석유구, 경작유구, 토굴, 폐기장, 토광목관묘, 석곽묘, 묘 등

용인 서천동 유적은 수원 영통과 화성 동탄 사이에 위치하며 서천지구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구제발굴조사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삼국~통일신라시대 주거지·원형수혈·경작유구·토기가마·숯가마, 고려~조선시대 주거지·수혈·건물지·기와가마·숯가마·토굴·묘·제철관련 공방지 등 742기에 이른다.
이들 유구에서 무문토기,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시루, 고배, 완고백자, 청자, 백자, 분청자, 청동합, 청동수저, 동전, 구슬, 복식 등 시대별로 다종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조사지역의 가지능선에서 산발적으로 확인되었으며 평면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다.
초기철기시대 토광목관묘는 경기지역에서 확인되는 목관묘의 양상과 유사하다. 능선의 정상부에 떨어진 중단부와 말단부에서 각각 1기가 확인되었으며 장축을 등고선과 직교하게 조성되었다. 1호와 2호는 축조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1호는 묘광을 비스듬히 판 후 목관을 안치하고 묘광과 목관사이를 5~20cm 크기의 할석과 흙으로 채웠으나 2호는 흙으로만 채웠다. 유물은 흑도장경호와 단면원형점토대토기 발 1점씩을 보강토에 부장하였다.

원삼국~삼국시대 주거지는 19기가 확인되었으며 평면 방형과 장방형 규모도 소형과 대형으로 구분된다. 소형에는 ‘一’자형 부뚜막을 시설하였으나 대형에는 부뚜막이 확인되지 않고 중앙이나 벽면에 치우쳐 노지을 만들었는데 용도의 차이일 가능성도 있다.
삼국시대 원형수혈은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 상단부에 집중되어 76기가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원형과 타원형이 대부분이나 방형과 장방형도 있으며 단면형태는 역제형, 원통형, 제형 등 다양하다. 같은 능선인 기 조사된 속반달이유적 53기의 원형수혈과 함께 하나의 능선에 수혈이 130여기나 분포하고 있어 주목된다.

통일신라시대 주거지는 능선말단부에서 곡간 저지대로 연결되는 것에서 20여기가 조사되었다, 평면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이며 내부시설로 아궁이와 여러 형태의 고래를 가진 구들, 배수로, 주혈이 확인된다. 대부분일정한 간격을 두고 동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조선시대 주거지 75기, 숯가마 14기, 묘 295기가 조사되었다.
숯가마는 구릉의 경사면 하단부에 확인되며 평면 역삼각형으로 바닥과 벽면은 열에 의해 딱딱하게 경화되었다. 묘는 등고선과 직교하게 조성되었으며 벽감과 요갱이 학인되고 있다.

서천동유적은 어느 한시기의 중심유적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구석기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동안의 다종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되는 복합유적으로 특정시기의 중심지나 거점으로서의 기능보다 중심지간을 연결하는 교통로 또는 변경지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 시기에 걸쳐 확인되는 주거, 생활유적과 함께 가마, 공방지 등 생산활동과 관련한 시설들은 이 지역의 시기별 문화상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주택공사, 2011, 『용인 서천동 유적』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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