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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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육봉일명사지
果川六峰逸明寺址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도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191호
명칭(한자) 과천육봉일명사지 (果川六峰逸明寺址)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3-04-21
소 재 지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산11번지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과천육봉일명사지(果川六峰逸明寺址)는 경기도기념물 제191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산11번지이다.

이 사지는 관악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주능선의 동쪽 계곡부 산중턱에 위치한다. 유적은 1999년도 발굴 결과 가람은 경사가 완만한 평탄 대지에 석축을 쌓아 조영된 것으로 확인 되었다. 또한 사지에서 건물지 3동, 암거시설, 석조유물, 기와편, 자기편, 토기편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건물지는 상단과 하단에서 발견되었는데, 유구와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상단 건물지가 금당, 하단 건물지는 요사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건물지의 유구와 유물이 안정된 층위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적어도 통일신라 말기에는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단 하부 건물지는 건물지의 규모와 우주에 활용되었던 초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정면3칸, 측면3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상단 상부 건물지는 다양한 형태의 초석과 적심이 남아있으며 중창된 건물로 정면4칸, 측면3칸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건물지에서 아궁이, 고래, 연도 등이 갖추어진 온돌시설이 확인되어 금당 용도의 건물로는 매우 드문 구조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하단 건물지는 상단 건물지의 동남쪽에 연하여 있었으며 정면3칸, 측면2칸의 건물로 조사되었다. 건물지에는 사각형과 판석형으로 다듬은 초석이 남아 있었다. 이 건물지에도 온돌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서쪽 편에서 마지막 칸에는 부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석축은 사지 남단부에 동서방향으로 축조되었는데 파손이 심한 상태였다. 대표적인 석조유물로 연화대석과 지대석과 탑신석 등의 석탑재가 남아있다. 연화대석은 2매가 확인되었는데, 1매는 복판 8엽의 연화문을 장식하였고, 다른1매는 단판8엽의 연화문을 배치하였다. 연화대석은 불상 대좌의 상대석과 하대석에 활용되었던 부재임을 알 수 있다. 석탑재는 정연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3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조 유물은 연화문의 표현 수법과 석탑의 세부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 사찰의 창건 시기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출토유물 중 수막새는 연화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암막새는 당초문, 귀목문 등 다양한 문양이 시문되었다. 평기와는 숭문, 어골문, 직선문, 격자문, 사격자문, 파도문, 복합문, 무문 등의 문양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범어(인도어)가 표시된 숭문기와, 사설문기와, 및 무문의 소와(小瓦)는 통일신라로 구분된 것이기 때문에 일명사는 통일신라 하대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인 18세기까지 존속되었던 사찰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지는 경기도 지역에서는 보고된 적이 드문 고찰(古刹)로 비교적 원형을 잃지 않고 있어 수도권의 불교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가 높은 사지로 평가되고 있다.

(자료출처 : 과천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문헌목록]
『경기도불적자료집』
『과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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