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천서원지
沂川書院址
沂川書院址
지정구분 | 도지정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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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및 지정번호 |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5호 |
명칭(한자) | 기천서원지 (沂川書院址) |
유형분류 | 유적건조물 |
지 정 일 | 1987-02-12 |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산26-1번지 지도로 보기 |
시 대 | 조선시대 |
기천서원지(沂川書院址)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5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산26-1번지이다.
모재 김안국, 회재 이언적, 지재 홍인우, 오리 이원익, 수몽 정엽, 택당 이식, 나재 홍명구, 기천 홍명하 등 여덟 분의 위패를 모신 기천서원이 있던 터이다. 이들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부터 효종(재위 1649∼1659)까지 이름난 현인들이다.
기천서원은 선조 13년(1580)에 처음 지었으며, 임진왜란(1592~1598) 때 소실되어 인조 3년(1625)에 중건되었고, 그 해 임금으로부터 ‘기천’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37년 서원터 옆에 모현사가 다시 지어졌고 1978년에 사당을 복원하였으며, 최근에는 부속 건물들도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기천서원은 마을 뒤쪽의 야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복원된 상태로는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터에 동·서재(東·西齋)가 위치하고 위쪽 터에는 사당이 자리 잡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갖추었는데 강당 없이 동·서재만 있는 특이한 배치구조를 지녔다. 서원 동쪽 언덕에는 모현사가 있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짜맞춘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고 내부에는 여덟 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익공계 맞배집으로 익공 없이 주두(柱頭)만 사용되었다. 모현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이 건물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부재 단면이 작은 편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문헌목록]
『문화재 안내문안집. 2』『경기지역의 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