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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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오이도 유적
始興 烏耳島 遺蹟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국가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사적 제441호
명칭(한자) 시흥 오이도 유적 (始興 烏耳島 遺蹟)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2-04-01
소 재 지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914번지 외 지도로 보기
시 대 선사시대

시흥 오이도 유적(始興 烏耳島 遺蹟)은 사적 제441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914번지 외 이다.

오이도는 경기도 시흥시와 약 4㎞ 떨어진 남북이 긴 섬이었으나, 1932년 갯벌을 염전으로 이용하면서 육지화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 말 시화공단을 조성하면서 완전히 육지화되었다. 인근에는 제부도·대부도·소래포구 등과 연결되어 있다. 시흥 오이도 유적은 수자원공사에서 오이도 추가단지 조성을 추진하기 위해 지표조사(1988) 및 발굴조사(1988·1994·1999~2001)를 한 결과, 신석기시대, 초기 철기시대, 백제시대의 패총과 통일신라시대 주거지(온돌)가 확인되어 우리나라 서해안 일대의 고대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유적이다.
발굴조사에 의해,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백제·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유구가 출토되었으며, 신석기시대의 토기·석기·수혈주거지·야외노지·화덕·청동기 패총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점토대토기, 삼국시대의 타날문토기 등 백제토기,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토기, 주거지 및 온돌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조사는 1988년 명지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월과 3월에 걸쳐서 2차례의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이도지역에서 신석기 패총은 4개 지역 8개소에서 확인되었는데, 다량의 토기편은 대부분 빗살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무문토기와 삼국시대의 토기도 수습되었다. 신포동 패총의 A·B·C의 세 지점에서 패총이 확인되었는데, A패총은 발굴조사 이전에 이미 훼손된 지역이고, C패총은 군부대 안에 위치한 관계로 간단한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B패총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야외노지 3기가 확인되었고 빗살무늬토기편 400여 점과 마제석부 2점, 굴따는 도구 1점, 마제 석촉 1점, 골촉 1점 등 모두 405점을 수습하였다. 소래벌 패총의 패각 더미는 오이도 내 패총을 파헤쳐 사료공장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패각 사이에서 소량의 빗살무늬토기편과 무문토기편이 나왔다.

가운데살막 패총에서는 수혈주거지 3기, 야외노지 4기 등의 유구를 비롯하여 빗살무늬토기편과 석기류 1,000여 점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가·나·다의 패총 가운데 ‘가’와 ‘다’는 발굴 전에 이미 훼손되었으며, ‘나’패총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나’패총에서는 모두 10개의 패각으로 이루어졌는데, 야외노지 4기가 확인되었고, 출토된 토기는 주로 구연부에 단사선문을, 기복부에 종주어골문이나 횡주어골문을 시문한 전형적인 암사동식 구문계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지역의 패총의 경우, 서울대학교 조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서해 도서지방의 유적들이 신석기 후기로 편년이 되어있는데 반해, 패총 절대 연대 값B.C.2920~2660년으로 신석기 중기까지 소급하고 있다.
뒷살막 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 야외노지 7기, 수혈주거지(추정) 1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빗살무늬토기편과 백제토기편·갈돌·갈판·고석·석부편·굴따는 석기 등 석기류 유물 500여 점이 수습되었다.

안말 주택밀집지역 시굴 및 발굴에서 흑요석 박편석기 1점이 확인되었으며, 발굴조사를 통해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백제 및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유구 수백점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는 A·B·C 의 세 지역으로 나누어 발굴되었다. A의 해안 사구에서 발견된 신석기패총은 화덕자리 36곳과 수백 점의 빗살무늬토기가 확인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황해도 지탑리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는 ‘W’자 모양이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었고, B의 청동기 패총은 다량의 점토대토기류와 발화석으로 여겨지는 홈이 파인 71개 및 생선뼈·사슴뼈 등이 출토되었으며, C의 통일신라시대 유적은 원형 14채의 집터 중, 온돌구조가 완전히 남아있는 5곳과 인화문토기와 물레자국이 확연한 다량의 대부완 등 신라토기가 출토되었다.

통상 서해안의 신석기 패총은 주로 구릉을 등지고 바라보는 해안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나 오이도 패총은 해안 사구에 까지도 널리 나타남으로써 분포의 광대함과 다양성을 파악케 해주었고 해안의 사구에도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었다. 또한 패총의 분포지역에 따라 문화적, 시기적인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우리나라 해안지역 주민의 생활상과 서해안 도서지방의 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며, 통일신라시대 주거지는 오이도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초기 철기시대의 점토대토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점토의 기원과 확산, 곧 중국으로부터 서해안 중서부지역으로 등장하는 과정과 내륙 또는 남해안으로 퍼져 나아가는 과정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 사적 제1권(증보판)』, 문화재청, 2010)

[문헌목록]
『문화재대관 사적 제1권(증보판)』
『경기문화재총람-국가지정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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