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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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공한계순묘역
襄平公韓繼純墓域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도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02호
명칭(한자) 양평공한계순묘역 (襄平公韓繼純墓域)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1-01-16
소 재 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산125번지 일대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양평공한계순묘역(襄平公韓繼純墓域)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0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산125번지 일대이다.

조선 초기 문신으로 창경궁을 영조(營造)할 때 공사를 관장하였던 한계순(韓繼純, 1431~1486)을 모신 유택이다. 한계순 묘역 부근에는 그의 조부(祖父)인 한상경(韓尙敬, 1360~1423) 묘역과 부(父)인 한혜(韓惠, 1403~1431) 묘역이 함께 안장되어 있다. 특히 이곳의 청주한씨 묘역들에서는 부인의 묘를 남편의 묘 바로 아래에 조성하였으며 그 아래에 사각의 부장묘가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계순(1431~1486)은 한상경의 손자이며, 한혜의 아들이다. 조선 초기 문신으로 자는 수옹(粹翁)이다. 예종대에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는데 공을 세워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 1등에 책록되고, 청평군(淸平君)에 봉해졌다. 창경궁을 영조할 때 선공제조(繕工提調)가 되어 공사를 관장하였으며, 그 공로로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한계순 묘역은 한상경 묘에서 동쪽으로 100m의 거리에 있으며 봉분은 2기로 부인 권씨(權氏)의 묘와 위 아래로 배치되어 있다. 석물로는 묘비 1기, 상석 1기, 장명등 1기, 문인석 2기, 2단의 계체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양식인 화관석(花冠石) 형태로 비양(碑揚)에는 2행으로 ‘수충익대명량좌리공신숭록대(輸忠翊戴明亮佐理功臣崇錄大) / 부청평군증휘양평공○○(夫靑平君贈諱襄平公○○)’ 라고 새겨져 있고, 비음(碑陰)에는 ‘대명성화이십이년병오(大明成化二十二年丙午)’의 간지가 있어 1486년(성종 17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봉분 앞의 장명등은 상태가 양호한 채로 보존되어 있는데 사모지붕형의 옥개석과 몸체부분의 안상문 등의 무늬가 잘 남아 있다.

한계순 묘 아래의 부인 권씨의 묘에는 화관석 묘비, 상석, 문인석 2기, 1단의 계체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의 비양에는 1행으로 ‘정경부인권씨지묘(貞敬夫人權氏之墓)’ 라고 새겨져 있고, 비음에는 ‘대명성화이십일년삼월립(大明城化二十一年三月立)’ 이라 새겨 있어 1485년(성종 16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인석은 복두공복(幞頭公服)에 홀(笏)을 들고 있는 형상으로 눈이 장승의 눈처럼 크게 조성된 것이 특징적이다. 묘역의 입구에는 총높이 230cm의 화관석 묘갈(墓碣)이 세워져 있는데 비양의 상단에 전서(篆書)로 ‘한양평공묘갈명(韓襄平公墓碣銘)’ 이라 횡서했다. 비문의 글씨는 마모가 많은 편이며, 건립연대는 성화(成化, 1465~1487)의 연호로 보아 한계순의 사망연대(1486) 혹은 그 다음해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남양주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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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남양주시청

한상경묘역
한상경(韓尙儆, 1360~1423)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며 개국공신으로 호는 신재, 고려 호부상서 공의의 손자로 판후덕부사 수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길창군 권적의 딸이다. 시호는 문간이다. 고려 말 1382년(우왕8)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1392년 이성계를 추대한 공으로 익대게국공신(翊戴開國功臣) 3등에 오르고 서원군에 봉해졌다. 중추원 도승지, 경지좌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제3대 태종 때 이조판서를 거쳐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으로 진봉되었고,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고 전한다. 아들은 혜(惠)이다.

그의 묘역은 진접읍 금곡리에 있으며 능선 끝에 한상경의 묘를 두고 바로 아래에 부인 오씨의 묘를 썼으며 그 밑에 사각의 부장묘를 세웠다. 봉분은 호석을 최근에 다시 만들었으며 그 앞에 상석이 있고 우측의 모표는 장방형 대석에 비신, 운문형 이수로 된 것으로 꼭지부분이 없어지고 글씨가 마모가 되어 판독하기 힘들다. 봉분 앞 장명등은 사각 모양의 대석을 하고 화창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팔작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데 덮개는 새로 조성한 것이다. 인근의 사당 앞에는 근래에 세워진 묘정비와 신도비가 있다.

한혜묘역
한혜(韓惠, 1403~1431)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호는 송재(松齋), 개국공신 서원부원군 한상경의 아들이며 이조판서 한계희(韓繼禧)의 생부이다. 1423년 아버지 한상경이 졸하자, 그는 부친의 공신봉작을 이어 받아 청산군(淸山君)에 봉해졌다.

그의 묘역은 전체적으로 고려식 묘제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로 작은 능선을 따라 정경부인 성주이씨(星州李氏)와 줄 세워 남서향하고 있는데 봉분은 호석을 앞에만 놓았고 봉분 뒤로 길다란 용미를 두었다. 봉분 앞에는 상석 장대석을 놓고 향로석은 장대석 밑에 놓았다.좌우에 문인석이 있다. 한혜의 묘 바로 아래에는 정경부인 창녕 성씨의 묘가 있는데, 봉분은 부군 묘와 같이 앞에만 호석을 놓고, 봉분은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봉분 앞에는 상석 장대석 향로석고 좌우에 문인석이 있으며 묘역 우측의 모표에는 고려 양식의 연화문 이수형 형태인데 마모가 심하다. 신도비는 사당 앞에 새로 세웠다.
[문헌목록]
『남양주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남양주문화재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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