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화재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적용
이맹현선생묘
李孟賢先生墓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도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114호
명칭(한자) 이맹현선생묘 (李孟賢先生墓)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1987-02-12
소 재 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로223번길 37-57(도곡리 산45-1)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이맹현선생묘(李孟賢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11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로223번길 37-57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이맹현(1436∼1487)의 묘지이다. 이맹현의 자는 사성(師聖), 호는 근재(覲齋), 호조참판 개지(介智)의 아들이며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1456년(세조 2)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재생으로 있을 때부터 경학(經學)에 명성이 높았다. 1460년 7월에는 춘당대시(春塘臺試)에 장원 급제하고 성균관주부가 되었다. 세조 10년에는 『동국통감(東國通鑑)』편수와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편찬에도 참여하면서 왕족들의 교육기관인 종학(宗學)의 도선(導善, 교사)을 겸직하기도 하였다. 그 뒤 사헌부장령, 이조정랑, 예문관응교 등을 지내면서 경연시독관·시강관 등을 겸하였다. 1475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해 경회루 중수 논의에 반대하였으며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어 여러 읍의 토지대장을 살펴보고 시정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477년 형조좌랑 직제학을 거쳐 예조참의가 되어 통정대부(정3품)가 되고 홍문관부제학에 올랐다. 후에 황해도관찰사가 되어서는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으며, 이후 나주목사를 지냈다. 문장에도 능하고 덕망이 높아 세조의 신임을 받았으며 유시(遺詩) 4수가 전한다.

봉분은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와 쌍분이다. 쌍분 앞에는 각각 묘비,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고, 묘역 좌우에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옛 것 2기와 새 것 1기로 모두 3기가 있는데 좌우 옛 묘비의 비문은 허침(許琛, 1444~1505)이 찬(撰)하여 성종 19년(1488)에 건립하였다. 쌍분의 중앙에 있는 오석제(烏石制) 새 묘비는 1956년 종중(宗中)에서 묘역을 정비할 때 원래의 비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써서 건립하였고, 위의 상석과 향로석도 새로이 교체한 것이다.

(자료출처 : 남양주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문헌목록]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남양주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 문화재를 보고 묘사하는 단어, 떠오르는 인상이나 느낌 등을 한 두 단어로 입력해보세요.
※ 여러분과 같거나 다른 생각들을 확인해보세요.
이전 다음 경기도 문화재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경기문화재단이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작품 사진의 경우 작품저작권자의 권리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문의 후 이용 바랍니다.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