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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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원몽린묘역
竹西元夢鱗墓域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도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29호
명칭(한자) 죽서원몽린묘역 (竹西元夢鱗墓域)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4-05-17
소 재 지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산11-110 지도로 보기
시 대

죽서원몽린묘역(竹西元夢鱗墓域)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산11-110번지이다.

원몽린(1648~1674)은 현종대의 인물로 본관은 원주, 자는 용여(龍歟), 호는 죽서(竹西)이다. 원산군(原山君) 원황(元滉, ?~1442)의 후손으로 충익공(忠翼公) 원두표의 손자이자 평안도관찰사 원만리의 아들이다. 1659년(효종 10) 효종의 제5녀인 숙경공주(淑敬公主)와 혼인하여 흥평위(興平尉)에 봉해졌다. 1661년(현종 2) 종1품 광덕대부(光德大夫)의 품계에 오르고 1672년(현종 13)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평안도 의주(義州)까지 갔다가 부친상(父親喪)으로 인해 되돌아 왔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지냈으며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묘는 상구리 안말의 뒤쪽에 위치한 원주원씨세장지의 남측에 자리 잡고 있다.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숙경공주와 합장묘이다. 석물로는 묘비 1기, 상석, 향로석 각 1기, 망주석,문인석 각 1쌍 및 계체석 등이 있다. 봉분은 원형의 호석을 두르고 있고 봉분 주위에는 곡장(曲墻)이 설치되어 있다. 봉분 앞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가 세워져 있다. 비신의 전면에 촉체(蜀體)로 유려하게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성록대부(成祿大夫) 흥평위(興平尉) 원공몽린용여지묘(元公夢鱗龍歟之墓) 숙경공주(淑敬公主) 부좌(祔左)’라 써 놓아 부부 합장묘임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삼면에는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았다. 상석 옆의 사각향로석에는 복련을 장식하였다.

묘역 좌우에는 망주석과 그 앞쪽으로 문인석이 각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망주석은 폭이 159㎝의 규모로 좌우측 모두 올라가는 형태의 쥐모양이 양각되어 있다. 문인석의 형태는 양관조복에 홀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조복 앞면에는 홀을 든 손등으로부터 포(袍)의 주름이 묘사되어 있고 뒷면에는 연화문양이 있는 대(帶)와 여의운문이 양각되어 있는 후수(後綬)를 묘사하였다. 묘소를 둘러싸고 있는 곡장은 좌우측면만 높게 조성되어 묘역을 보호하고 후면은 3단의 석축으로만 쌓고 뒤쪽에 조성되어 있는 아버지 원만리의 묘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돌계단을 조성한 것이 특징적이다.

묘역에 이르는 입구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가 1기 세워져 있다. 비신 앞쪽의 글씨가 일부 마모되었지만 전반적인 상태는 양호하다. 백대리석의 비신에 영의정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지은 비문을, 서성(書聖)으로 추앙받는 중국 진(晋)나라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로 짜깁기하였다.(집진왕희지서-集晋王羲之書) 그리고 ‘흥평위(興平尉) 효헌(孝憲) 원공(元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 올린 전액도 중국 당(唐)의 이양빙(李陽氷) 전서(篆書)로 집자하였고, 비신의 뒷면에 아들 원경하가 지은 추기(追記) 역시 당(唐)나라 유공권(柳公權)의 해서를 모아 각자하였다.(집당유공권서-集唐柳公權書) 비제는 ‘유명조선(有明朝鮮) 성록대부(成祿大夫) 흥평위(興平尉) 증(贈) □ 덕대부(德大夫) □ □ □ 원공(元公)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序)’이고,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신사(三辛巳, 1761, 영조 37) 중춘각(仲春刻)’이다.

원몽린 묘 뒤에 조성되어 있는 묘역은 원몽린의 아버지인 원만리(元萬里, 1624~1672)의 묘역이다. 원만리의 묘역에 곡장을 설치하지 않은 것을 판단할 때 왕의 부마인 원몽린의 묘역을 더 예우(禮遇)를 갖추어 조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도비의 전액은 특이하게 2행으로 상하로 연결되면서 기록하였는데 내용은 ‘흥평위효헌원공신도비명(興平尉孝憲元公神道碑銘)’이다. 비문은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쓰고 비문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으며, 전액은 당나라 이양빙(李揚氷)의 글자를 집자하였다. 신도비의 비음은 당의 명필이었던 유공권(柳公權)의 글자를 집자하여 새긴 것이다.

원몽린 묘역은 효종의 부마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바로 위에 조성된 아버지 원만리의 묘역과 묘역조성에 있어서 예우의 차원이 확연하게 보인다. 따라서 당시의 묘제를 연구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신도비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서예사에도 큰 영향을 끼친, 중국 명필 3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으로 금석학사(金石學史)나 서예사(書藝史)의 귀중한 유물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여주문화원)

[문헌목록]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3)』
『문화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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