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문화재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파주 공효공 박중손묘 장명등
坡州 恭孝公 朴仲孫墓 長明燈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국가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보물 제1323호
명칭(한자) 파주 공효공 박중손묘 장명등 (坡州 恭孝公 朴仲孫墓 長明燈)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1-09-21
소 재 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방촌로879번길 194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파주 공효공 박중손묘 장명등(坡州 恭孝公 朴仲孫墓 長明燈)은 보물 제1323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방촌로879번길 194이다.

조선시대 전기 세종대부터 세조대에 이르기까지 활약하였던 당상관 밀양박씨 밀산군 공효공 박중손과 정경부인 남평문씨의 쌍분 앞에 놓여 있는 장명등이다. 1412년에 태어난 밀산군은 세종 7년 15세에 성균시에 합격 진사가 되었고 세종 17년 대과에 급제하여 집현전박사에 뽑혔으며 서운관에 임명되어 천문과 역관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첨지통례 겸 동첨사로서 동궁을 잘 보좌하였으며 의정부 검상 및 사인 승정원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세종 12년(1466)에 55세로 하세하였다.

밀산군 묘표 앞에 세워진 일월형 화창을 지닌 장명등은 조선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조성된 사각형 장명등이다. 이 작품은 두 장의 돌로 구성된 것으로 밑 부재는 등부에 속하는 것으로 등좌부와 화사부까지 한 장 돌에 조각하였으며, 윗 부재로는 옥개석과 보주로 구성된 부분을 조각하였다. 등부는 하대, 중대, 상대 등으로 세분되어 있으며 현재 지상에 노출된 하대부분은 18㎝가 되며 폭은 58.5㎝가 되는 평면 방형이다.

지상에 노출된 기부의 중간 부위로 보이는 부분에 간대로 경계로 삼고 있으며 윗 상단 부분에는 높은 곡형(사분원의 몰딩)으로 아무런 장식을 첨가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이 부분에는 복련장식을 첨가할 수도 있겠으나 소박하게 민무늬로 마감하였다. 중대인 간주는 하광상형으로 역시 무늬는 첨가하지 않았다. 상대석에는 하대와 같은 구조인 앙대로 이루어 져 있으며 곧바로 약간의 턱을 남기고 화사부로 구성되어 있다.

화사석 역시 방형으로 정면과 뒷면을 관통한 방형의 화창을 배치하고 향좌측 화사벽 중앙부에 해당되는 부위에는 반달형의 화창을 설치하였으며, 향우면의 화사벽 중앙부에는 원형의 화창을 설치하였다. 이처럼 화사석에 땅을 상징하는 방형의 화창을 비롯하여 달을 상징하는 반달형 화창과 해를 상징하는 원형 화창을 구비하고 있는 예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비교적 흔한 것으로 겸창시대(鎌倉時代)후기와 실정시대(室町時代)에 조성된 작품 중에 1312년 조성의 고목신사에 세워진 육석등에 어안형(魚眼形)혹은 반태극형(半太極形) 유사 화창의 자료가 있어 비교연구의 좋은 자료로 주목된다.

옥개석부는 옥개석과 상륜인 보주를 한 장 돌에 모두 조각하였다. 옥개석은 둔후한 사각추형의 모습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옥개 밑면에는 3단의 옥개받침을 조출하였으며 1단은 낮게 외목돌이 짜임새를 모각하였다. 2단에는 연목짜임 층 전각부위에 선자와 추녀모습을 들어내 보이고 있으며, 3단인 처마 부위에는 부연이 설치되어 있다. 아울러 전각 부위에는 사래를 조촐하여 목부조의 처마밑 구조를 연상시키고 있다. 처마밑 끝단과 낙수단은 비교적 두터운 평행선을 유지한 양단 면이 연함면 혹은 막새면을 이루면서 좌우 양전각을 향해 급작스런 반전의 추녀곡선을 이루고 있다.

옥객의 상단은 용마루에 해당되는 부위로 폭 37㎝인 방형 평면으로 수평을 유지하면서 우동에는 명확한 추녀마루를 형성하고 있는데, 역시 추녀마루의 2/3지점에서 약간의 반전곡선을 유지하면서 전각과 합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즉 옥개정상은 별도의 용마루를 생략하였으나 방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용마루를 생략한 정상부로부터 옥개의 낙수면을 형성한 낙수단까지 낙수면은 급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는데, 옥개에 비하여 옥개의 높이가 높으므로 급한 낙수면을 유지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옥개의 용마루 부위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데 아무런 장식을 취하지는 않고 있다. 상륜부는 옥개의 정상 중아부에 설치된 것으로 연주대와 큼직한 연봉으로 막음하였다.

이처럼 공효공의 장명등은 한국 유일의 일월형 화창을 구비한 것으로 전부재가 완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밀산군 공효공께서 하세한 직후 세조 12년(1466)에 신도비와 함께 조성되었다. 신도비는 당대에 유명한 문장가 상락백 김수녕이 찬하고 중추부지사 성임이 서하고 형조참판 정란종이 각한 것으로 ‘유명조선국수충위사협찬정란공신숭록대부밀산군시공효공박중손신도비명(有名朝鮮國輸忠衛社協贊靖難功臣崇祿大夫密山君諡恭孝公朴仲孫神道碑銘)’이란 비제(碑題)가 있어 신도비와 장명등이 세워진 실 년대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보물편·석조2, 개정판)』)

[문헌목록]
『(국보·보물) 문화유산을 찾아서-경기도·인천광역시』
※ 문화재를 보고 묘사하는 단어, 떠오르는 인상이나 느낌 등을 한 두 단어로 입력해보세요.
※ 여러분과 같거나 다른 생각들을 확인해보세요.
이전 다음 국가지정 문화재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경기문화재단이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작품 사진의 경우 작품저작권자의 권리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문의 후 이용 바랍니다.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