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발굴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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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적위치 : 오산시 내삼미동 624번지 일원 (16-1임)
  • 시 대 : 청동기, 삼국, 조선
  • 조사기관 : 경기문화재연구원
  • 조사연도 : 2009~2010
  • 유구내용 : 주거지, 수혈, 석곽묘, 석실묘, 묘, 가마, 고상가옥, 구상유구

오산 내삼미동 유적은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에 조성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중 하나로 2지점에 해당한다. 현재 삼미마을 엘크루 19단지아프트가 건립되어 있다.
매홀중학교 동쪽에 위치한 필봉에서 동서방향으로 뻗은 가지구릉 2개소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40기, 삼국시대 주거지 31기, 조선시대 주거지 3기, 청동기~조선시대의 수혈 100기,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석곽묘와 석실묘 7기, 묘 7기, 가마 4기, 고상가옥 2기, 구상유구 2기 등 198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주거지는 오산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한 이웃 능선(1지점)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내삼미동유적을 중심으로 청동기시대 대규모의 취락이 형성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세장방형주거지는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으며 장방형은 정상부와 사면, 방형은 사면에 조성되었다. 조사된 주거지간의 중복관계를 통해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평면형태가‘세장방형→(바닥너비가)축소된 세장방형→장방형’으로 변천하는 양상이 재확인하였다. 유물은 구순각목문 공렬토기,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단사선문 공렬토기, 대부옹, 석도, 석촉, 석부, 석검 등의 주요유물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주거지는 평면형태가 방형, 장방형, 철자형이 확인되었으며 기반암풍화토를 이용하여 쪽구들 부분이 벽과 잇대어 바닥보다 얕게 단이 지도록 굴착한 후 아궁이와 고래만 추가로 굴착하여 조성하였다. 고래는 난방의 효율을 중시하여 덮개돌 전체에 열이 고루 전달될 수 있도록 양쪽이 엇갈리게 시설된 독특한 형태이며, 개자리가 발달되었다. 원삼국~삼국시대 쪽구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내삼미동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구조이며, 기존의 쪽구들 보다 시설이 용이하며 발전된 형태의 취사·난방시설로 볼 수 있다. 유물는 고배, 완 등의 신라토기, 장란형토기, 심발형토기, 직구단경호, 호, 시루, 등 다양한 기종의 백제토기, 철모, 철촉, 철겸, 철도자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수혈은 조사지역 전체에 분포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조선시대까지 걸쳐 조성되었다. 평면형태는 원형, 방형 등 다양하며, 삼국시대의 단면 플라스크형의 원형수혈은 5기가 확인되었다.
석곽묘와 석실묘는 A구역 남쪽사면의 말단부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일부는 서쪽 정사부의 남쪽사면에도 위치하고 있다. 유물은 고배, 유개합, 대부장경호, 완, 철도자가 출토되었으며, 신라후기양식토기와 인화문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신라의 한강진출 이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마는 측구부탄요와 탄요, 와요, 삼가마가 확인되었으며, 주구릉의 남사면과 동쪽 말단부와 북쪽 말단부에 각각 분포한다. 유일하게 유물이 출토된 와요에서는 태선문계의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음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오산 내삼미동 유적의 조사성과로 볼 때 가장 주목되는 점은 삼국시대 주거지의 독특한 구조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 주거지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결과가 대략 5~6세기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한성백제가 멸망한 이후의 주거지와 유물의 변천양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내삼미동유적이 지표가 될 수 있는 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주택공사, 2011, 『오산 내삼미동유적』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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