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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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당포성
漣川 堂浦城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국가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사적 제468호
명칭(한자) 연천 당포성 (漣川 堂浦城)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2006-01-02
소 재 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88 등 지도로 보기
시 대 삼국시대

연천 당포성(漣川 堂浦城)은 사적 제46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88번지 일대이다.

당포성은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일대의 임진강 북안에 위치해 있다. 천군 미산면 삼화리에서 372번 지방도를 타고 마전리 쪽으로 가다가 삼화교를 건너 곧 오른쪽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유적에 이르게 된다. 당포성에 관하여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이 없으며 유일하게 미수 허목(1595~1682)의 『기언별집(記言別集)』에 ‘마전 앞의 언덕 강벽 위에 옛 진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위에 총사가 있고, 그 앞의 나루를 당개라 하는데 큰물이 흘러 나룻 길로 통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포성은 1994년 육군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하여 처음 소개되었고, 2003년 이후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성의 구조가 밝혀지게 되었다. 당포성은 임진강의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과 임진강으로 인하여 형성된 약 13m 높이의 긴 삼각형 단애 위에 축성되어 있는데, 입지조건과 평면 형태와 축성방법은 호로고루 및 은대리성과 매우 유사하다.
당포성은 파주의 어유지리 방면에서 마전을 거쳐 삭령에서 토산을 거쳐 신계방면으로 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양주방면에서 북상하는 적을 방어하는데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곳은 임진강을 건너 양주 방면으로 남하하는 적을 방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위치이므로 신라의 점령기에도 계속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포성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직 단애(斷崖)를 이루지 않은 동쪽에만 석축성벽을 쌓아 막았다. 동성벽은 길이 50m·잔존 높이 6m 정도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하며 전체 둘레는 450m 정도로 호로고루보다는 약간 큰 규모이다. 당포성은 동벽이 내외성의 2중성으로 구축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것은 동벽에서 70m 거리에 외성으로 추정되는 토루가 확인되었기 때문인데, 도로개설과정에서 노출된 토루의 단면을 확인한 결과 바닥부분에서도 고려시대의 기와편이 박혀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와는 관련이 없는 후대의 구조물인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당포성의 동벽은 호로고루와 달리 동벽의 남단부가 석축으로 마감되어 있어 기저부와 중심부는 판축으로 구축되고 내외벽부분만 석축으로 구축된 호로고루와는 축성기법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동벽 부분에 대한 단면 확인조사 결과 호로고루와 동일한 구조임이 확인되었다. 즉 기저부와 중심부는 판축으로 구축되었으며, 판축토 위에 체성벽이 올라가고 체성벽 바깥쪽에 암반층에서부터 쌓아올린 보축성벽을 쌓아서 체성벽의 중간부분까지 이르도록 하고 보축성벽의 바깥쪽에는 중간부분부터 다시 점토를 덧대어서 보강을 한 구조이다. 당포성도 호로고루와 마찬가지로 보축성벽과 보강토의 기저부에서 2m 정도 이격된 지점에서부터 신라가 새로운 성벽을 덧붙여 쌓았다.

당포성의 성돌도 호로고루와 마찬가지로 고구려 성벽은 현무암 성돌을 사용한 반면, 신라성벽의 성돌은 화강편마암을 사용하였다. 신라의 와적층은 화강편마암이 덧붙여쌓은 신라 성벽기저부에서부터 동쪽으로 길게 연결되며 두텁게 쌓여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층위상으로 볼 때 발굴에서 확인된 너비 6m, 깊이 3m 규모의 해자는 고구려성벽의 해자가 아니라 신라성벽의 해자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체성벽의 외면에는 수직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구축되어 있다. 수직홈의 크기는 41×42㎝ 이며 하단부에는 확돌이 놓여 있는데 구멍의 크기는 깊이 7㎝, 지름 31~22㎝ 이다. 수직홈은 약1.7m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모두 5열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수직홈은 평양의 대성산성에서도 확인되며, 호로고루에서도 같은 모양의 확돌이 확인되어 호로고루의 체성벽에도 수직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수직홈의 기능에 대해서는 성을 쌓기 위한 구조물이거나 투석기 등 성을 방어하는 장비와 관계된 것, 또는 수압을 낮추기 위한 목적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성 내부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여러 기의건물터와 수혈유구 등이 확인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의 유구와 중복되어 있으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다.

출토유물은 선조문과 격자문이 타날된 회색의 신라기와 경질토기편이 주류를 이루지만 고구려 토기편과 기와편도 확인된다. 고구려 기와편은 대부분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호로고루와 달리 승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기와 내면에 모골와통에 의한 모골흔과 함께 횡방향으로 2차 타날된 승문이 찍혀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것은 모골와통에 의하여 요철이 심하게 된 기와 내면을 2차 정면하기 위하여 둥근 방망이에 노끈을 감아서 타날한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제작기법은 무등리 1보루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당포성은 호로고루·은대리성과 함께 강안의 단애 위에 구축된 삼각형의 강안평지성으로서, 구조적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이다. 당포성은 특히 임진강의 당개나루를 방어하기 위하여 구축된 성으로서 호로고루와 함께 고구려의 국경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포성은 호로고루와 마찬가지로 정비계획이 수립되어 복원·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성벽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져 보토 후 잔디를 식재하고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정상부에 목제 데크가 구축되어 관람객으로부터의 훼손을 방지하고 관람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또한 성벽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고 성 내부를 순환할 수 있는 순환로가 설치되어 있으며 관람객의 안전사고를 막고, 성으로서의 경관을 보강하기 위하여 목제 여장이 구축되어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 사적 제2권(증보판)』)

[문헌목록]
『남녘의 고구려 문화유산』
『한국의 성곽과 봉수下』
『임진강 주변 고구려성을 찾아서-우리역사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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