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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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홍법리남양홍씨묘역
華城弘法里南陽洪氏墓域
한자이름, 종목 및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로 구성된 표입니다.
지정구분 도지정문화재
종목 및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168호
명칭(한자) 화성홍법리남양홍씨묘역 (華城弘法里南陽洪氏墓域)
유형분류 유적건조물
지 정 일 1999-04-26
소 재 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사길12번길 34일원 지도로 보기
시 대 조선시대

화성홍법리남양홍씨묘역(華城弘法里南陽洪氏墓域)은 경기도기념물 제16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 산30번지이다.

이곳에는 홍언필(洪彦弼 : 1476~1549), 홍섬(洪暹 : 1504~1585), 홍형(洪泂 : 1446~1500), 홍담(洪曇 : 1509~1576), 홍진도(洪振道 : 1584~1649) 등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묘역은 봉분 11기, 문인석 10기, 동자석 2기, 망주석 10기, 묘비 4기, 상석 5좌, 향로석 5좌, 신도비 5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에 근년에 지어진 '곡좌제(曲座齊)'란 사당이 있는데, 이는 묵재공(默齋公) 홍언필과 그의 아들 인재공(忍齋公) 홍섬이 조정의 당상관을 지내면서 정사에 관한 토론이나 강론시에 비록 공석이라 하여도 부자지간이기에 마주보고 앉을 수가 없어서 동서로 굽게 앉아 정사를 논하였다 하여 세간에서 곡좌(曲座)의 집안이라 칭한데서 유래한다.
조선 중기 때의 묘역으로 당대의 덕망 있는 학자, 정치가인 조광조, 송시열, 한호 등에 의해 찬서(撰書)된 신도비를 살펴볼 수 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당시대의 문화수준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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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홍언필 묘(洪彦弼墓)
홍언필은 조선 성종(成宗) 7년(1476)에 태어나, 중종(中宗) 2년(1507)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저작(著作), 지평을 지낸 다음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중종 21년(1526) 형조참판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대사헌, 이조·호조·병조·형조 판서를 거쳐 우찬성에 이르렀다. 중종 39년(1544)에 영의정에 오른 다음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으로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서는 『묵제집(黙齋集)』이 있고, 시호는 문희(文僖)다.
묘역에는 봉분 3기를 비롯하여 묘비,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그리고 신도비가 있다. 봉분은 둘레석을 설치하였으며, 묘비는 화관석(花冠石)이 있는 것과 월두형(月頭形)이 서로 1기씩 있다. 신도비는 팔작지붕인 개석과 비신, 연꽃무늬가 조각된 대좌로 이루어져 있다. 대리석을 재질로 이용하였고 글씨는 상태가 양호하다. 비문은 정사룡(鄭士龍 : 1491~1570)이 짓고 송인(宋寅 : 1516~1584)이 썼으며, 명종 4년(1549)에 건립되었다.

홍섬 묘(洪暹墓)
홍섬은 연산군(燕山君) 10년(1504)에 태어나 중종 23년(1528) 사마시에 올라 이듬해 정시(庭試)에 합격하고 정자(正字), 교리, 집의를 거쳐 대사성·이조참의,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명종(明宗) 7년(1552)에 청백리에 녹선 되었고 공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냈다. 『명종실록(明宗實錄)』을 감수하였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묘역에는 봉분과 묘비, 상석, 향로석, 문인석, 망주석, 신도비가 있다. 화관석이 있는 묘비의 재질은 대리석이며, 문인석은 묘역의 다른 석물(石物)과 비교할 때 상당히 큰 편(높이 190㎝)이다.
신도비는 봉분 바로 옆에 위치하며 팔작지붕 형태의 개석, 비신, 안상문이 조각된 대좌로 이루어져있다. 글씨는 김귀영(金貴榮 : 1520~1593)이 짓고, 한호(韓濩 : 1543~1605)가 썼으며 남응운(南應雲 : 1509~1587)이 전(篆)을 한 이 신도비는 선조(宣祖) 19년(1586)에 건립되었다.

홍형 묘(洪泂墓)
홍형은 세종(世宗) 28년(1446) 태어났으며 성종(成宗) 8년(147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사헌부 감찰, 교리 등을 거쳐 경원부판관이 되었다. 이어 부제학을 지내고 우부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역에는 봉분을 비롯하여 묘비, 상석, 문인석, 망주석 그리고 신도비가 있다. 월두형의 묘비는 조광조(趙光祖 : 1482~1519)가 짓고 송시열(宋時烈 : 1607~1689)이 글씨를 썼다.

홍담 묘(洪曇墓)
홍담은 중종 4년(1509)에 태어나 중종 34년(1539)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정자, 응교, 이조좌랑, 도승지를 역임하고 명종 10년(1555)에 한성부좌윤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이어서 예조판서, 호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묘역은 3기의 봉분과 상석, 향로석, 신도비 등이 있다. 신도비는 팔작지붕 형태의 개석, 비신, 대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근(柳根 : 1549~1627)이 글을 짓고 오준(吳竣 : 1587~1666)이 썼으며 건립 연대는 인조(仁祖) 18년(1640)이다.

홍진도 묘(洪振道墓)
홍진도는 선조 17년(1584)에 태어나 광해군 5년(1613)에 별제를 거쳐 목천현감으로 재임중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으로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졌다. 공조정랑, 공주목사를 거쳐 인조 24년(1645)에 사은겸 주청부사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이어서 지의금부사, 한성부판윤,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묘역에는 봉분과 상석, 향로석,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신도비가 있다. 독특하게 이 묘역에는 길이 100㎝되는 동자석이 2기 있다. 신도비는 팔작지붕 형태의 개석, 비신, 비좌로 이루어져있다. 글씨는 이의현(李宜顯 : 1669~1745)이 글을 짓고, 홍봉조(洪鳳祚 : 1680~1760)가 썼으며 김진상(金鎭商 : 1684~1755)이 전(篆)을 한 이 신도비는 숙종 15년(1689)에 건립되었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문헌목록]
『화성시 문화재 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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